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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글귀/성인 추천 도서

[책 속 글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by SSoLely 2023. 11. 24.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 그곳에서 현재 최고의 주목과 찬사를 받는 작가가 있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 같은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와 견주어지며 국제 문학계의 떠오르는 별로 꼽히는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이야기다. 섬세하고 감동적인 필체로 유명한 키건은 24년의 활동 기간 동안 펴낸 단 4권의 책으로 전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천재 소설가라는 칭호와 함께 평단의 찬사를 받아왔으며 특히 지금, 세계의 독자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마침내 처음 번역 출간되는 키건의 책 『맡겨진 소녀』는 2009년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낯선 친척 집에 맡겨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말없는 소녀」 또한 세계 관객들의 열렬한 호평을 받으며 올해 5월 3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새로운 전율을 표현할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_김금희(소설가) 소설이란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정수. _김보라(영화감독)
저자
클레어 키건
출판
다산책방
출판일
2023.04.21

※ 다시 찾아보고 싶을 구절을 기록하였습니다. 본문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책을 우선 완독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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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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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차례


    맡겨진 소녀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17쪽.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24쪽.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27쪽.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28쪽.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30쪽.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30쪽.

     "캄캄한 게 무서워?"
     나는 무섭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말 할 수가 없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31쪽.

    아주머니는 몸을 숙이고 입맞춤을, 가벼운 입맞춤을 한 다음 잘 자라고 인사한다. 아주머니가 나가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방을 둘러본다. 벽지에 색색의 기차가 달리고 있다. 기찻길은 없지만 군데군데 작은 남자애가 멀찍이 떨어져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행복해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벽지에 그려진 남자애의 모습들이 하나같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32쪽.

    잠시 후 두 남자가 초인종을 울리더니 학교 지붕 교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복권을 팔러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사야지." 킨셀라 아저씨가 말했다.
     "우린 사실 그렇게⋯⋯"
     "들어오게." 킨셀라 아저씨가 말했다. "나한테 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집 애들 머리에 비가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47쪽.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죽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69쪽.

    "가끔 어부들이 바다에서 말을 발견하는 거 아니? 언젠가 내가 아는 사람이 바다에 빠진 수컷 망아지를 끌고 나온 적이 있는데 한참 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더구나. 아주 멀쩡했대. 너무 오래 돌아다니느라 지쳤을 뿐이었지."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72쪽.

    물건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나는 우리가 함께한 나날을, 우리가 물건을 샀던 곳과 이따금 나누었던 대화를, 그리고 거의 항상 빛나고 있던 태양을 떠올린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83쪽.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96쪽.


    옮긴이의 말

    킨셀라 씨가 이웃에게 주인공 소녀에 대해서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칭찬하거나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전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생각 등,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자체에 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함축적이고 여백이 많은 글로 분위기나 감정을 오히려 정확하게 전달하는 클레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며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102쪽.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면서 정확한 단어 선택으로 분위기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클레어 키건의 글은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허진 역, 다산북스, 2023년,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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